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 정부가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를 완화하기로 했다. 이는 미국의 수출통제 규제 완화 합의가 촉매가 된 것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불안 완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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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종료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2025.10.30 handbrother@yna.co.kr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일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기업의 실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건에 부합하는 수출 신청에는 면제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네덜란드 정부의 부당한 기업 간섭이 글로벌 산업 공급망의 혼란을 초래했다”며 네덜란드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공급망의 안정성을 고려하고 있으며, 어려움에 처한 기업은 상무부에 직접 연락하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미중 통상 갈등이 유럽으로 번진 대표적 사례다. 지난 9월, 미국 상무부는 수출통제 대상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에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 윙테크(Wingtech)가 2019년 36억 달러에 인수한 넥스페리아의 자산과 지식재산권을 동결하고, 경영권을 박탈했다.

넥스페리아는 현대자동차, 폴크스바겐, BMW, 도요타 등 주요 완성차에 쓰이는 범용 반도체를 생산하며, 전체 생산의 80%를 중국 공장에서 수행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즉각 반발하며 넥스페리아의 중국 내 공장과 하청업체 제품의 해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다이오드 및 트랜지스터 공급난에 대한 우려를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지분 50% 규칙’ 등 일부 수출통제 조치를 1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번 합의는 넥스페리아 사태의 해소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네덜란드 정부는 공식 입장을 자제하면서도 “중국 및 국제 파트너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며, 공급망 균형 회복을 위한 건설적 해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넥스페리아 측도 “긴장 완화를 촉구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유럽연합(EU) 역시 10월 3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중국과의 회담에서 넥스페리아 및 희토류를 포함한 수출통제 문제를 논의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양측이 통제 정책을 갱신하고 협력할 기회를 마련했다”고 평가했으나, 넥스페리아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했다.

독일 경제부는 “중국의 조치가 긴장 완화의 초기 신호”라며 “베이징 발표의 실제 영향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중 간 무역·기술 갈등 속에서도 현실적인 타협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의 수출 규제 완화와 중국의 조건부 수출 허용이 맞물리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향후 유럽의 기술안보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조정될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