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탈팡'하고 싶은데"…'디지털 소외' 노인들은 '끙끙'
쿠팡 이용 8명 중 1명 노인 추정 "뭘 어떻게 하란 건지…결국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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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개인정보 유출, 5개월 간 지속 (서울=연합뉴스)

쿠팡 개인정보 유출이 3천만 건을 넘어선 가운데 노인 이용자들이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불안만 키우고 있다. 탈퇴와 보안조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디지털 취약계층의 접근성이 낮아 피해 예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부산 해운대에 사는 김성만(71)씨는 최근 쿠팡으로부터 개인정보 노출 문자를 받은 뒤 스미싱 전화가 쏟아지며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가족이 여러 조치를 안내했지만 스스로 따라 하기 어렵다며 “탈퇴하려 해도 과정이 너무 복잡해 포기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김씨처럼 일상적 소비를 위해 쿠팡을 사용해 온 고령층은 탈퇴를 희망하면서도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 그대로 노출 상태에 놓여 있다.

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분석에 따르면 쿠팡 결제 사용자 중 60대 이상은 209만 명으로 전체의 12.7%를 차지한다. 1년 전보다 25% 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용자 증가만큼 피해 예방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아 고령층이 방치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번호 도용 차단, 명의도용 방지, 스미싱 신고 절차 등 다양한 ‘피해 방지 팁’이 공유되고 있지만, 노인들은 접근 자체가 어렵다. 서울 은평구의 김경애(68)씨는 “부탁할 수 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현실이 드러난다. 60대 이상 고령층의 76.4%가 디지털 문제 발생 시 가족에게 의존한다고 답했고, 스스로 해결한다는 응답은 35.7%에 불과했다. 디지털 기기가 익숙한 젊은 층과 현격한 격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외국인 사용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 사토우 레이(24)씨는 “유출 사실도 충격인데, 확인 절차나 보안 안내가 전문 용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히 범인이 중국 국적이라는 의심이 제기되며 불안감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특정 집단이 아닌 전국민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큰 만큼,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즉각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정보 접근성이 낮은 노인·외국인일수록 불안이 더 커진다”며 “지방자치단체가 고령층·외국인을 위한 대면 상담 창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이삼식 원장도 “미혼모나 아동에게 제공되는 전용 창구처럼, 디지털 범죄 취약층 대상 무료 상담 콜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규모가 역사적 최대치로 기록된 가운데, 디지털 능력이 취약한 고령층과 외국인 이용자들이 피해 대응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사회적 위험을 예고한다. 빠른 제도 보완과 공공 지원 체계 구축 없이는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