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평화안이 친러시아 성향을 벗어나 젤렌스키 대통령 쪽으로 급격히 이동한 배경에 덴 드리스콜(Dan Driscoll) 미 육군장관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 능력을 강하게 칭찬하며 미국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고, 이러한 기술이 미국에 큰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라임저널) 트럼프 평화안 뒤흔든 ‘드론 가이’ 드리스콜…우크라 전쟁 협상 판도 전격 변경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드리스콜 장관은 불과 며칠 만에 군 조직 책임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 핵심 인물로 급부상했다. 그는 이라크전 참전 용사이며 벤처캐피털리스트 출신으로, 부통령 JD 벤스(JD Vance)의 대학 시절 친구다. 그는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대통령을 만나 평화안 초안을 전달했고, 이어 아랍에미리트에서 러시아 대표단과 접촉해 전투 중단 가능성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드리스콜 장관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1985년생으로 39세에 육군장관에 임명된 드리스콜은 취임 이후 줄곧 드론의 군사적 가치를 강조해왔다. 국방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의 당초 우크라이나 방문 목적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운용 방식 조사였으나, 백악관이 갑작스럽게 대통령 특사 역할을 부여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직접 회담하는 일정으로 확대됐다. 그는 현장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고, 병사들과 악수를 나누며 전투 능력을 칭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제한 없이 드론을 현장에서 즉석 생산하는 능력을 미국 방위산업의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향후 2~3년 내 100만 대의 드론을 구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드론 가이(Drone Guy)’라고 부르고 있다. 육군장관은 100만 명에 달하는 병력과 예산·장비·훈련을 총괄하는 민간 최고 책임자지만, 직접적인 군사작전 지휘권은 없다.

드리스콜을 전쟁 종식 협상 특사로 발탁한 것은 매우 파격적 결정이다. CSIS의 관계자들은 “드리스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외교 라인에서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만, 부통령 벤스와의 관계와 실행력을 인정받아 발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참전 경력을 가진 군 가문이기도 하다.

드리스콜은 우크라이나에서 28개 항목으로 구성된 평화안 초안을 전달했고, 이후 아부다비에서 러시아 측과 단독 협상을 이어갔다. 미국 측의 빠른 진전은 유럽 정상들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예상치 못한 속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드리스콜이 조정한 새로운 평화안은 기존 초안에서 ‘우크라이나군 감군’과 ‘나토의 우크라이나 불개입 명문화’ 조항이 삭제됐으며, 러시아 침공 시 미국의 안전보장 조항 등이 포함된 19개 수정안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틀랜틱 카운슬 연구원들은 그를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해결사”로 평가했다. 반면 해그세스(Pete Hegseth)는 군 내부 신뢰 부족과 논란으로 협상 라인에 배제되며 드리스콜과 대비됐다. 미 행정부 인사들은 “군 내부 신뢰도는 드리스콜이 훨씬 높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리스콜은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AI 속도를 인간 두뇌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미래 전쟁은 드론과 AI 의존도가 절대적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병사들의 피가 아니라 실리콘과 소프트웨어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2020년 노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으나 약 8% 득표로 낙선한 정치적 경력도 있다. 최근 차기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는 “국방부 최고직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포스트는 군 내부 핵심 인사 집단이 현 국방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Lloyd Austin)을 지지하기 때문에 드리스콜이 그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뉴욕포스트는 또한 드리스콜이 기존 방위산업 계약 구조에 회의적이면서 신기술 중심의 개혁을 강조해 행정부 내 신뢰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에게 전달된 메시지에는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미국과 나토도 이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결국 어려운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 평화안이 우크라이나의 존엄성과 동맹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지만, 이후 수정된 평화안을 조건부로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친러시아 기조로 흐르던 트럼프 행정부의 평화 논의는 드리스콜 장관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균형을 찾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협상 방식이 푸틴 대통령에게도 통할지, 그리고 어떠한 최종안이 마련될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자료: AP News, Politico, Reuters, Defense News, Guardian